2020 OCI Young Creatives로 선정된 정해나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

'긴 머리와 그보다 더 긴 혀를 가진 동물의 실종'
흔적도 없이 사라진 존재를 추적하는 어느 형사의 잠입기를 한 권의 사건 일지와 16점의 평면 회화로 선보여

이동현 승인 2020.07.20 11:13 의견 0
정해나_연회장의 밤 2. 초봄 석양의 테라스_2020_옻지에 채색_91×60.5㎝ [사진=OCI미술관 제공]


[나눔경제뉴스=이동현기자] OCI미술관은 2020 OCI Young Creatives 선정 작가인 정해나 개인전 ‘긴 머리와 그보다 더 긴 혀를 가진 동물의 실종’을 오는 23일부터 1층 전시장에서 회화 작품 16점과 1권의 책자가 선보인다.

전시 제목 ‘긴 머리와 그보다 더 긴 혀를 가진 동물’은 여성을 뜻하는 러시아 속담으로, 정해나는 이 전시에서 ‘털을 가진 동물’이 사라진 사건을 추적하는 잠입 형사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다.

작가는 창작 속 가상 인물인 형사는 실종자를 찾기 위하여 어느 창작스튜디오에 소설가로 위장하여 입주한다. 분명 세상에 존재했으나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, 세상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흔적 없이 증발해버린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? 기필코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잠입한 형사는 어느덧 제법 그럴듯한 작가(소설가)의 태도를 취하며 점차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다.

정해나_연회장의 밤 5. 실비 내리는 댄스홀_2020_옻지에 채색_91×60.5㎝ [사진=OCI미술관 제공]


계절의 흐름에 따라 기승전결의 구도를 갖춘 이번 전시에서 정해나는 사건의 장면마다 그림을 그려 시각 이미지로 구현한다. 특히 ‘연회장의 밤’ 연작에서는 실재하는 창작스튜디오의 현대적 건물을 배경으로 옛 그림에서 나올 법한 짙은 안개와 영롱한 구름, 기암괴석과 하늘거리는 여인의 옷차림 등이 중첩되어 몽환적인 시공간으로 연출된다. 마치 옛이야기를 담은 ‘요재지이’나 ‘아라비안나이트’ 를 눈으로 보는 듯 우화적이고 전설적인 묘사로, 작가는 이를 위하여 먹과 호분 등과 같은 재료뿐만 아니라 연회도, 기명절지도, 사녀도 등 동양 전통화의 양식을 차용했다.

은유적으로 에둘러 표현되었지만 실상 여기에는 사라지는 여인들, 매일 아침 뉴스에서 접하는 비자발적 • 강제적 실종은 물론이거니와 점차 사라지는 여성 작가들과 주변인에 대한 의구심과 항변이 담겨있다. 현실에서 사회적 주변부에 가해지는 세상의 부조리와 무관심 앞에서,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듯, 정해나의 작품 속 형사 역시 이 사건의 전말을 비밀스럽게 간직하며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. 모종의 음모를 짐작하게 하지만, 그 누구도 발설하지 않는 진실이다.

정해나_A동의 밤_2020_비단에 채색_75×170㎝ [사진=OCI미술관 제공]


본인의 경험에서부터 작품의 소재를 찾아 발전시키는 정해나는 최근 침묵과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에 집중해 왔다. 이번 전시는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으로, 작가는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학사, 석사,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. 구체적인 사건을 상정하여 더욱 성숙한 스토리텔링과 섬세한 필치를 선보이는 이 전시에서 작가는 사회적 이슈가 어떻게 예술적 형식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, 그리고 젊은 여성 작가에게 부과되는 녹록지 않은 현실 삶의 무게를 어떻게 가까스로 인내하는지를 글과 그림으로 깊이 있게 보여준다. 전시는 8월 15일까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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